범법자 복제하는 저작권법 개정안

범법자 복제하는 저작권법 개정안
“불법 다운로드를 방지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헤비업로더’에게는 강력한 처벌을, 가정에서 사적으로 이용하는 개인

다운로더들에게는 지속적으로 교육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규제 설계다.” 

-최승재 경북대 교수

영화진흥위원회 등이 진행하는 ‘굿 다운로더 캠페인’에 유명 영화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다른 한편에서 정부는 지난 8월 ‘불법 다운로드’의 판단 기준을 확대한 저작권법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씨네21 손홍주

배우 현빈이 유리벽에 “고맙습니다”라고 쓴 뒤, 화면을 향해 윙크를 날린다. 이어서 등장한 배우 신민아도 “사랑합니다”라고 쓰면서 시청자를 향해 미소를 짓는다. 이어서 장동건, 하지원, 김주혁 등 익숙한 얼굴들이 잇따라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영화인들이 펼치는 ‘굿 다운로더 캠페인’ 공익광고다. 이 광고가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한국 영화와 음반산업의 발전을 위해 ‘불법 다운로드’를 하지 말아달라는 말이다. 이 광고를 보면서 가슴이 뜨끔한 사람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3월 행정안전부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누리꾼 가운데 인터넷 콘텐츠를 무단으로 내려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24%였다. 이 비율은 그나마 점잖은 편이다. 조사기관에 따라 ‘범법자’의 비율은 50%를 육박하기도 한다.

‘최신 영화 다운로드=불법’이라는 오해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과연 누가 ‘굿 다운로더’일까? 어디까지가 합법이고 어디까지가 불법일까? 답은 생각처럼 명쾌하게 떨어지지 않는다. 저작권법의 규정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저작권법 30조 ‘사적 이용을 위한 복제’ 조항을 봤다. “공표된 저작물을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아니하고 개인적으로 이용하거나 가정 및 이에 준하는 한정된 범위 안에서 이용하는 경우에는 그 이용자는 이를 복제할 수 있다.” 이 조건이라면, 이를테면 영화 <방자전>을 내려받아 친구와 함께 봐도 법에 걸릴 이유가 없다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이 부분은 ‘최신 영화 다운로드=불법’으로 생각하는 통념과는 엇갈리는 부분이다.

이런 ‘면책’의 구실을 준 이유는 네 가지다. 첫째, 사적인 복제는 저작권자의 이익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 둘째, 개인이 저작권자를 일일이 파악하고 허락을 받는 데 비용이 많이 든다. 셋째, 개인의 사적인 이용을 모두 파악해 저작권을 집행하는 비용도 많이 든다. 넷째, 개인의 복제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 있다. 쉽게 말해, 30조 규정이 없다면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복사하는 사소한 일도 모두 ‘불법’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다.

그렇지만 지난 2008년 8월에 나온 판례는 다른 의견을 냈다. 당시 서울중앙지법은 “복제의 대상이 되는 파일이 저작권을 침해한 불법 파일인 것을 미필적으로나마 알고 있었다면… (복제 행위가) 적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저작권법 30조의 해석에서 ‘공표된 저작물’은 적법성을 전제하고 있다는 일부 학설을 따른 것이다. 이 판결은 저작권법에 대한 매우 적극적인 해석으로 논란을 낳았다. 개인적인 정보 사용을 보장한 30조의 취지와도 어긋날 뿐 아니라, 판정의 기준이 애매하기 때문이었다. 법원으로서는 저작권을 침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용자가 불법 파일임을 미리 알고 있었는지 파악해야 했다. 흔한 말로 열 길 물속보다 알기 어려운 ‘한 길 사람 속’을 파악해야 하는 문제가 됐다.

정부도 문제를 알고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2월19일 문제가 되는 30조를 손본 저작권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저작권을 침해한 복제물임을 알면서 복제하는 경우” 법에 걸린다는 단서조항을 달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불법 복제물을 개인적으로 이용하는 행위가 법에서 허용하고 있는 범위에 포함되는지 여부가 불명확했다”며 “국민들의 저작물 이용에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어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의 이익이 이용자 프라이버시에 앞선다?

문제는 정부의 개정안이 개악에 가깝다는 점이다. 정보공유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바로 반대 성명을 낸 이유다. 개정안이 실효성도 없고 부작용만 낳을 것이라는 요지였다. 정보공유연대의 자료를 보면, 근거는 무려 여덟 가지였다. 그 가운데 일부를 살펴보자.

우선, 개정안이 통과되면 소송이 남발될 수 있다. 정보공유연대는 “지금도 일부 법무법인과 권리자 단체에 의해 무분별한 고소·고발 및 비합리적인 합의금 요구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이용자의 사적 복제 행위까지 불법으로 규정될 수 있다면 그러한 관행이 더욱 확대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이용자의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도 함께 남았다. 정보공유연대는 “저작권은 창작자에게 ‘배타적 권리’를 주려는 정책적 고려에 기반한 인위적 권리인 반면,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는 헌법과 국제 인권조약에서 보장하는 인간의 기본권이다. 매우 사적인 영역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사적 복제를 불법으로 규정하면, 저작권 보호를 명분으로 이용자의 사생활에 대한 공권력의 지나친 개입을 정당화해줄 위험이 크다”고 밝혔다. 그 밖에 저작물 이용이 위축될 수 있고, 온라인 저작물이 적법한지를 분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점도 함께 지적됐다.

정부는 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배경에는 문화체육관광부의 ‘편향’이 자리잡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저작권자들의 권리 보호에만 지나치게 기울었다고 지적한다. 저작권법 1조 ‘목적’ 조항을 보면,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문화 및 관련 산업의 향상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목적은 문화의 창달에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었다는 지적이 많다. 최승재 경북대 교수(법학)는 “저작권법의 기본적인 목적은 저작권자에게 이익을 줘서 더 많은 저작물을 만들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목적은 문화 창달이고, 수단은 저작권의 보호와 창작물의 공유 두가지다. 그러나 자칫 보호에 치중하면 소외계층이 발생하고 문화적 다양성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저작권법은 저작권의 보호에 치중한다”고 설명했다. 오병일 정보공유연대 대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저작권 단체의 이익만을 지켜주는 대변자가 되고 있다. 공적 기관으로서 이용자의 권리 확대를 위해서도 균형 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처방이 맥을 잘못 짚었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일단 정부의 구상을 엿보면, 저작권을 침해하는 저작물의 공급과 수요를 모두 틀어막겠다는 속셈이다. 지난 8월에 낸 자료에서 문화체육관광부는 “불법 복제물 유통의 궁극적인 원인이… 헤비업로더와 일부 온라인 서비스 사업자들에게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규제를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저작권법 개정을 통해 일반 누리꾼에게도 무단 복제물을 내려받는 게 불법이라는 분명한 신호를 보낸다는 것이다. 저작권위원회 관계자는 “불법 저작물 공급자는 분명히 처벌을 하지만, 수요자인 개인들은 처벌보다 계도를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저작권법 개정은 단순히 ‘계도’ 이상의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개정안은 무단 복제물을 내려받는 개인에게 민사상의 책임을 묻고 있다. 정부가 ‘불법 다운로드’의 폭을 넓게 잡으면서 민사소송의 여지를 넓혀놓은 셈이다.

“헤비업로더만 처벌해야”

최승재 교수는 “저작권법을 개정하는 문제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불법 다운로드를 방지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헤비업로더’에게는 강력한 처벌을, 가정에서 사적으로 이용하는 개인 다운로더들에게는 지속적으로 교육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규제 설계다”라고 말했다. 남희섭 변리사는 “시장에서 저작권 침해 사례가 뚜렷이 줄어드는 추세인데, 정부가 저작권자들의 이해를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저작권단체연합회의 자료를 보면, 불법 복제물에 의한 재산 피해 추산액은 2006년 1조9085억원에서 지난해 1조4251억원으로 줄었다.

저작권법 개정안은 지난 8월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현재 국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인터넷으로 음반과 영화를 내려받는 평범한 누리꾼들이 잠재적인 ‘범법자’가 될지는 국회의 손에 달린 셈이다.